저탄소 목조건축의 미래, 일본 산골에서 찾다

고치현 목조건축 현장 르포
매니저 2024-10-08 조회수 : 71

지난 7월17일 고치현 니요도가와 임업진흥센터를 찾은 답사단원들.

일본 벽지 산골 동네에 21세기 저탄소 건축의 미래가 움텄다. 산간 오지로 꼽히는 시코쿠섬 남쪽 고치현은 최근 주목받는 친환경 목조건축의 흐름을 앞서 이끄는 임업 시스템 혁신의 현장이 됐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나무집 건축이 콘크리트 건축을 대체할 대안 모델로 각광받자 고치현에서 1990년대 이래 목조건축 활성화를 염두에 두고 구축해온 산림 육성과 목재 활용·유통 시스템에 세계 건축계의 시선이 쏠린다.

고치현은 일본 현들 가운데 삼림 면적 비율이 84%로 가장 높고 양질의 편백나무(히노키. 일본 내 생산량 1위)와 삼나무(스기)가 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지역 임업생산자조합과 타지에서 임업과 목조건축을 배우러 온 청년들이 합심해 숲에서 캐낸 나무들로 지역 공공시설과 기업 사무실을 짓고 지역 경제를 꾸리는 새 모델 만들기가 한창이다. 지난 7월 ‘저탄소사회를 지향하는 목조건축협회’(회장 김종헌 배재대 교수)가 주관한 고치현 임업 생산·시공·유통 현장답사를 동행 취재했다.

고치현립임업대학교 교장실의 집무용 나무 탁자. 교장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나무 명패와 그가 2018년 설계한 리쿠젠타카타 암웨이하우스의 모델링 조형물이 보인다.

시골 학교장은 세계적 건축 거장

“우리 학교는 깊숙한 시골에 있지만, 교장은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 선생입니다.” 답사 첫날 고치현립임업대학교 교무과 주임 후쿠야마 세이의 소개말을 들으며 교장실로 들어간 답사단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내 벽체와 바닥 모두 나무였다. 집무용 탁자엔 구마 겐고 교장의 나무 명패와 그가 수년 전 설계한 대형 목조건축물의 모형이 있었다. 벽체, 탁자, 소파, 명패 등은 삼나무·편백나무 재료로 디자인했다.

구마는 2021년 도쿄올림픽이 열린 국립주경기장을 자잘한 목부재들로 만들어 주목받은 목조건축의 최고 대가. 최근 서울 청계산 자락에 들어선 소리박물관 ‘오디움’을 설계했고, 한국 사무소를 개설해 서울 성수동 도시재생사업에도 관여해왔다. 1990년대 일본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일감이 끊겼을 때 고치현 유스하라의 구름 위 호텔을 설계하면서 처음 나무를 전면 도입한 건축을 시작했고, 간간이 고치현 삼림을 찾으며 목조건축의 구상을 키워나갔다. 이런 인연으로 이 학교가 2018년 개교한 이래 교장을 맡고 있다. 학교 성격을 ‘임업을 살리고 활성화하는 플랫폼’으로 요약한 그는 산림관리, 임업기술, 목조설계 분야 전공 학생들을 가르친다.

고치현립임업대학교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과 난간 부분. 천장과 벽면, 계단 등을 고치산 나무판재를 여러겹 압축해 붙인 고강도 부재로 마무리했다. ‘시엘티’(CLT), ‘지엘티’(GLT) 등으로 구분되는 이 집성재는 목재이면서도 콘크리트를 능가하는 내구성과 내화성을 지녀 21세기 목조건축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지난 7월16일 일본 고치현립임업대학교 강의홀에서 답사단이 설명을 듣고 있다. 천장 부분에 일본 전통 건축의 결구 방식으로 짜놓은 격자형 나무부재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학교 건물이 강의 교재

후쿠야마 주임은 “교사 건물 자체가 유력한 교재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림관리 전문가와 목조건축가를 양성하는 고치현립임업대는 결이 다른 두 건물로 나뉜다. 여러 나무부재를 교차해 붙여 강도를 높이면서 목조 고층건물 건립의 물꼬를 튼 시엘티(CLT·Cross Laminated Timber) 부재로 건립한 시엘티 강의동과, 일본 전통 목조건축술로 건립한 재래공법동 강의동이 양쪽에 있고, 그 사이를 내화동이란 연결통로 건물이 이어주는 얼개다.

특이한 건 재래공법동 강의동의 천장. 일본 전통 건축의 결구 방식으로 짠 격자형 나무부재 구조물이 눈길을 끌었다. ‘누키(貫) 공법’으로, 마주 보는 벽체 기둥 윗부분 사이에 긴 대를 걸쳐 놓고, 그 위 천장을 받치는 다발 같은 구조물을 관통하게 했다. 따로 중간 기둥을 세우지 않고도 온전히 천장부 무게를 측면 벽체에 전달해 천장을 받칠 수 있게 한 전통 건축술이다.

학교 견학에 앞서 들른 고치현 삼림조합연합회 건물의 실험동에선 목재 열처리와 건조, 바닥 구조체 수평내력 등 다양한 시험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15~35년 묵은 삼나무·편백나무 부재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매달고 10~30년 그대로 두면서 수분이 빠지는 정도에 따라 얼마나 처졌는지를 측정하는 피로도 실험에 눈길이 집중됐다.

7월17일 고치현 니요도가와 고산지대인 쓰보이산 정상 부근 벌채 작업 현장을 답사단이 지켜보고 있다. 대당 9천만엔 넘는 유럽산 고가 장비인 타워야드가 배치돼 다른 벌목 기계들이 베어낸 원목들을 줄로 꿰어 한 장소로 실어 나르고 있다.

첩첩산중 속 로봇식 벌채

다음날 찾은 곳은 고치시 북서쪽 니요도가와초(정)의 고산 벌채 현장. 해발 1000m가 넘는 쓰보이산 정상 부근에선 로봇을 연상시키는 첨단 기계 장치들이 벌목 현장을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로봇 팔과 포클레인을 결합한 듯한 벌채 장비 하베스트가 기계 팔을 들어 나무를 치고, 벌목재들을 로프로 끌어올려 한데 모으는 타워야드가 굉음을 내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정부에서 전액 비용을 대 조달한 외국산 장비들이다.

니요도가와 임산협동조합의 가타오카 히로이치 대표이사는 “벌채한 나무들은 바로 아래 제재 가공공장으로 옮겨져 등급이 분류되고 건조와 가공 등을 거친다. 벌채한 자리에는 육묘장에서 키운 묘목이 바로 식재돼 새로 조림이 이뤄진다”고 했다. 20세기 초부터 조림 상황을 관리해온 까닭에 어디를 벌채하고 조림할지 관련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벌채 현장 아래 니요도가와 임업진흥센터 건물은 대들보를 두지 않고 ‘제2의 콘크리트’라는 시엘티 부재를 맞물려 맞배형으로 사선 천장 구조로 지어진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아래쪽 계곡의 이케가와 목재공업회사 제2공장과 제4공장에서는 벌채한 나무의 제재와 건조, 이 과정에서 배출된 연료용 부속물 바이오매스의 생산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벌채 현장에서 첨단 기계를 이용해 제재할 목재를 다듬고, 현장 관계자들이 판매 수요까지 예측하며, 그 아래 공장에서는 부재의 등급과 건조 가공작업까지 바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본 국내 전문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치현 난코쿠시에 있는 고치현 삼림조합연합회관 실험동 내부. 고치현에서 벌채한 제재목을 기기에 고정시킨 뒤 무거운 철봉을 목재 아래에 매단 채 15년 간격으로 30년 이상 시간을 두고 ‘처짐’ 정도를 측정하는 피로도 실험을 진행 중이다.

7월18일 고치시 목재 프리컷 공장에서 답사단에 공개된 나무 가공 부재 상품들. 함수율, 강도 등 분석 과정을 거쳐 분류된 등급에 따라 노출재, 내장재, 구조재, 연료재 등으로 각기 달리 가공된다.

순환하는 목조건축 기반 시스템

마지막 날에는 원목으로 집성재를 만드는 공장 시설과 고치시 목재시장을 돌아봤다. 수분을 머금은 함수율과 강도를 측정해 기준에 떨어지는 건 옆으로 솎아내고 합격한 것은 단면을 자르고 접착제를 발라 결합시키면서 집성재를 만드는 자동화 공정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듯 펼쳐졌다. 이곳 출신으로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닦은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얼굴을 상호로 삼은 목재도매시장의 텐트 건물 안에는 기계식으로 건조하고 규격화된 부재들이 쌓여 있었다.

답사 참가자들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 시스템은 물론 인식의 격차가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승환 영림목재 대표는 “국내엔 집성재의 자동화 제작 라인과 마트형 시장은 아직 없다. 믿고 찾을 유통시장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김종헌 회장은 “벌채, 조림, 가공, 유통 등의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런 기반을 닦아 많은 건축가들이 대중의 감성과 잇닿는 목조건축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는 문화 풍토를 뿌리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목조건축, 외국은 고층 경쟁…한국은 법령 미비

국내 목조건축 활성화 위한 과제는

2019년 노르웨이에 완공된 높이 85m의 목조건물. 모엘벤 그룹 제공

목조건축의 가장 큰 장점은 콘크리트건축보다 탄소 배출량이 4분의 1 이하로 월등히 적다는 데 있다. 게다가 수령 50년 지난 나무는 산소 배출량과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현격히 떨어지므로 벌채 뒤 가공해 목조건축물로 만드는 게 기후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응이라고 전문가들은 권고한다. 견고한 탄소 저장고를 도시 곳곳에 짓는 셈이니 숲을 조성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관건은 도시에 대형 목조건축물을 지을 수 있느냐다. 유력한 해법으로 떠오른 것이 교차형 집성재 또는 집성판으로 번역되는 시엘티(CLT) 부재다. 내구 강도가 철의 2~3배, 콘크리트의 9배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고, 휨이나 뒤틀림 현상도 별로 없다.

시엘티 재료가 대대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서구에선 최근 최고층 목조건물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 10층 이상 목조건물이 건립됐고, 2022년 25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립해 세계 최고층 목조건물로 인증받은 미국 밀워키시는 최근 높이 180m 넘는 55층짜리 목조빌딩 건립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도 내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행사장 링 구조물을 목조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고, 장기적으로 100층에 육박하는 목조빌딩을 구상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7층 규모로 완공돼 국내 최고 목조건축물이 될 것으로 보이는 산림복지종합교육센터 조감도. 산림청 제공

한국도 산림청을 중심으로 2010년대 이후 공공건물을 목조건축으로 지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산림청은 올해 하반기 대전 관저동에 지상 7층(27.6m) 규모의 ‘산림복지종합교육센터’를 국내 최고층 목조건물로 완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목조건축 문화가 시민과 기업들 인식 속에 뿌리내리게 하려면 제도적 환경부터 구축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엔 목조건축 자체에 대한 전문 법령이 아직 없다. 재료를 명시하지 않은 채 건축물 구조기준 등에 대한 규칙 등이 존재하지만, 실제론 물성이 다른 콘크리트 중심 법제에 가깝다는 게 김소라 서울시립대 교수 등의 지적이다.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지난 7월 ‘공공건축물의 목재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고치현(일본)/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신문 등록 2024-10-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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